[더블유스타트업 김민주 기자] 본지는 지난 9월 29일 중소벤처기업부 '스마트슈퍼' 구축사업 시범사업으로 선정된 국내 스마트슈퍼 1호점 '형제슈퍼' 의 임시개점 현장을 방문해 최초 보도한 바 있다. 이후 이달 15일로 예정된 스마트슈퍼 1호점 공식 개점현판식 행사를 찾아 국내 '동네슈퍼의 24시 디지털화', 그 첫 시작의 순간을 함께 했다.
명함을 주고 받는 사람들
현판식 행사는 코로나19로 인해 최소한의 인원만 참석해 제한적으로 진행됐다. 비교적 낮시간대 주택 밀집가 임에도 불구하고, 번잡하지 않은 공식행사였다. 말쑥한 비지니스 정장 차림의 재킷에 기관 심볼뱃지를 한 각 단체 관계자들은 명함을 서로 주고 받으며 '삼삼오오' 정책 간담회를 이어갔다.
행사장에는 이창우 동작구청장과,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조봉환 소상공인시장진흥 공단 이사장, 임원배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장 을 비롯 스마트슈퍼로 선정된 4개 시범사업 대표들도 뜻깊은 자리를 위해 전국 각지에서 올라왔다.
"소일거리라도 해서 자식들한테 손안벌리게 하는게 중요하지요. 노인부부들이 60대가 다 되셔서요 나름의 합리적인 선택이셨어요." 조봉환 소진공 이사장에게 임원배 한수협연합회장이 건낸 말이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수장(首長)의 등장
"박영선 장관님 오신대..." "서울시장 나가실 분이잖아..." 이날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의 주관심의 대상은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었다.
"언론인 분들 오랜만입니다. 수고가 많으십니다." "멀리 지방 나들가게에서도 오셨습니다."
'디지털강국 대한민국 K마스크' 글귀가 적힌 마스크를 착용하고 전용차에서 내린 박장관은 이날 참석자 모두에게 치하의 말을 건냈다.
이어 시범사업으로 선정된 점주를 비롯 관계자들과 30여분 동안 인근 카페에서 차담회를 가진 뒤 본격적인 현판식 행사를 가졌다.
박 장관은 스마트슈퍼 입구에서 신용카드인증으로 매장내부로 들어가 무인계산대 상품결제를 마치고 구매한 상품을 두손에 들고 나와서 "직접 구매 해보니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박 장관은 “동네슈퍼가 대형 슈퍼마켓과 전쟁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정부는 오는 2025년까지 스마트슈퍼 4000개를 조성하고, 소상공인의 디지털 전환을 지원하며 최선을 다하겠다" 고 밝혔다.
또다른 시선들
때아닌 운집된 무리에 가던 걸음을 멈추고 관심을 보인 건 동네 주민들이었다.
"어디 불이라도 난 줄 알았어요.." "장사가 잘 안돼서 접은 줄 알았는데 이렇게 바뀌었네요." 동네에 스마트슈퍼 1호점이 생겨서 좋으시겠다는 기자의 물음에 이곳에 거주한지 오래된 한 50대 여성 주민 A씨는 "이것 다 우리가 낸 아까운 세금으로 한거 아닙니까" 하며 함께 지켜보던 주민과 볼멘소리를 주고 받기도 했다.
카메라가 들이데길래 뭔가 싶어 와봤다는 동네 주민 70대 여성 B씨는 "여러가지로 좋겠네, 아이디어가 좋다 늙은 사람들은 (기계사용법) 몰라서도 못해.." 하며 먼발치서 자동입출입 장치를 사용해 슈퍼마켓을 출입하는 사람을 지켜 봤다.
스마트폰으로 시시각각 현장 상황을 주변 지인들에게 알리기 바쁜 젊은사람들의 모습들도 눈에 띄었다. 평소에 스마트슈퍼 이용해 본적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 20대 청년은 "가까운 중형할인마트를 주로 이용해서 자주 이용하진 않았다"며 "아르바이트생들 일자리 줄어들어서 어떡하냐" 며 우려 썪인 말을 전했다.
현판식이 끝난 자리
의전 행렬과 뒷따르는 이웃주민의 악수요청에 응하던 박 장관의 뒷모습이 까만색 전용차문에서 시선이 사라질 때 쯤, 행사를 진행하던 정부기관 담당자들도 하나 둘 행사장에서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한바탕 소란스러운 시간이 지난 뒤, 기자는 스마트 슈퍼 1호점 사장님과 가족들을 대면했다.
직장 월차까지 쓰고 행사에 참석했다는 딸 최혜란(31)씨와 대학에서 환경공학을 전공한다는 아들 최호근(24)씨는 매장 곳곳을 둘러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스마트 슈퍼의 '환골탈태'는 스마트장비가 가장 포커스를 받는 부분이지만, 실상 외관상 보여지는 세련된 간판과 인테리어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렇다면 이 결과물이 전적으로 정부개입의 결과였을까.
"그 간판 우리아들이 직접 디자이너 섭외해서 제작 한거에요. 여름 휴가때 아내와 둘이 속초여행가서 내가 일일이 시내 번화가 돌아보며 사진 찍어서 요즘 트렌드는 ‘검은 바탕에 무광이다’를 캐치해서 아들에게 바로 사진을 송출했지요."
이 모든 리모델링의 과정에 정부예산과 인프라가 투입됐던 것은 아니었다. "간판 네이밍도 'Smart' 에 '나들가게'를 붙이자라는 의견도 제가 낸 것이었습니다."
대표 최제형(60)씨는 시범점포로 선정된 다른 스마트슈퍼들이 저희 가게처럼 리모델링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면 실망할 수도 있을것 이라고 우려했다. 간판, 내·외부 조명 제작 등 추가 시설에 든 자비 부담금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해당 슈퍼마켓이 본인소유 건물에 임대료가 없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최씨는 설명했다.
스마트슈퍼 1호점은 점주와 가족 구성원 모두와 정부의 지원이 만들어낸 합작품이었다. 리모델링 계획 초기 가족회의에서 가장이자 대표인 최씨의 반대를 무릎쓰고 의견을 추진한건 아내분과 자녀들이었다.
“제가 돈이 많이 들어가서 처음에 그렇게 많이 반대를 했어요. 왕따가 됐다니까요. 쉰세대 라나 뭐라나..”
그래서 리모델링 한것에 후회를 하냐는 기자의 물음에 최 대표는 "후회는 전혀 없습니다" 하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드러내 보였다.
대화를 이어가는 도중 개장 첫날 도난 사건이 발생했다.
“제가 아는 자폐아 에요. 물건 좀 훔쳐가면 어떻습니까. 저 정도는 그냥 놔둡니다.”
스마트 슈퍼 개장 첫날 절도범을 목격하는 순간에 주변인들은 경찰을 부르라며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물건 가져가시면 안된다며 두 자녀가 불이나케 도망가는 사람을 붙잡으려던 찰나 최대표는 그냥 보내주라 손을 내저었다.
"저 아이 부모를 제가 압니다. 자폐아에요.. " 10년 가까이 한 장소에서 동네슈퍼마켓을 운영하던 최 대표의 말이다.
삼삼오오 소문난 잔치가 끝난 뒤 몰려든 사람들은 최씨에게 익숙한 인사를 건냈다.
"축하해요, 어떤가 구경하러 왔어." 하며 매장서 구매한 콩우유를 나눠마시며 슈퍼마켓 앞 테이블에 앉아 동네 단골 주민들이 서로 담소를 나눴다.
어느새 동네슈퍼는 이웃주민들의 편의를 제공하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명함요? 저는 그런거 없습니다. 장사하는 사람이 그런게 뭐 필요합니까”
보름전이나, 지금이나 사장님은 여전히 명함이 없다. 사장님은 오늘 수십개의 명함을 손에 받기만 했을뿐, 다만, 연락처를 요청하는 사람에게 구두로 번호를 하나하나 일러줄 뿐이었다. 동네슈퍼가 스마트슈퍼가 됐지만 여전히 그는 동네슈퍼마켓 사장님이다.
공식행사지만 격식을 차리지도 않은 여느 때처럼 소탈한 옷차림에 꾸밈없이 인사를 나누는 모습은 영락없는 소상공인의 모습이었다.
“내가 나이가 들어보니, 일을 하지 않고 쉬어보니, 죽겠더라고요. 사람이 일을 해야해. 그래서 앞으로 가족끼리 운영할 요량으로 리모델링을 하게 된거에요“
스마트 형제슈퍼는 최 대표와 가족들의 새로운 삶의 터전이 된 셈이다.
최 대표가 인터뷰에 응하는 동안, 아내분은 손님을 맞으며 계산일을 돌봤다.
한켠에서 딸은 소상공인진흥공단에서 제공된 광고문구를 창문에 부착했고, 아들은 매장 물품을 정리했다. 18평 작은 공간에 네 식구가 모여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스마트슈퍼마켓'은 어느새 '페미리마트'가 됐다.
이웃의 '정'과 '안면'이 곧 '신용'이 돼 물건을 외상값에 가져가기도 하던, 쌈짓돈 건네주며 물건과 맞 바꾸던 동네 '구멍가게'는 언젠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게 될지도 모른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집 앞 작은 동네슈퍼마켓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디지털화 된 세상에서 아날로그와 마주하는 것은 이제, 추억이 서리는 순간이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