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스타트업 2.0] '한국판 실리콘밸리' 꿈을 이루다
창업타운 원조 '세운상가', 1세대 벤처기업 탄생 '테헤란 밸리', 닷컴 열풍타고 벤처 요람 등극 '판교 테크노밸리' 정부 주도 조성, 스타트업 육성 12월 개관 예정 '인천 스타트업 파크' 성공 여부 주목
[더블유스타트업 김민주 기자] 지난달 28일 찾아간 인천광역시 연수구 ‘인천 스타트업 파크.’
12월 중순경 개관할 예정인 이곳은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었다. 진척도는 약 80%다.
인천광역시는 지난해 7월 중기부가 주관하는 ‘스타트업 파크’ 공모사업에서 광역지방자치단체들 가운데 최종 1위로 선정됐다. 이 사업은 미국 실리콘밸리, 중국 중관촌(中關村) 프랑스의 스테이션-F 와 같은 창업자 투자자, 대학·연구소, 기업 등이 협력 교류하면서 성과를 창출하는 공간인 ‘개방형 혁신 창업거점’을 구축하기 위해 추진하는 것으로, 인천시는 대전광역시와 충청남도를 제치고 ‘제1호 스타트업파크’로 선정됐다.
사업을 주관하는 인천경제자유구역청(IFEZ)측은 선정 배경으로 기존 건물을 리모델링 하는 방안을 제안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IFEZ 관계자는 “인천 스타트업 파크는 투마로우 시티라는 기존 건물을 활용했기 때문에 신축을 제안한 다른 지역과 달리 빨리 중축을 할 수 있다”면서 “장소 뿐만 아니라 제반사항이 기본적으로 갖춰져 있고, 기업‧학교간 산학협력이 용이한 입지 조건이 경쟁력으로 작용했다”고 강조했다.
인천 스타트업 파크는 지하철 인천대입구역과 연결되고 복합환승센터가 있어 교통이 편리하며, 주변에 송도 센트럴파크와 송도국제업무단지, 인천대학교 등이 있다. 무엇보다도 국내 도시 가운데 최고의 ICT(정보통신) 인프라를 갖춘 송도는 미래를 위한 사업 아이디어를 창출하기 위해 가장 이상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다.
또한 인천 스타트업 파크는 민‧관 합동으로 추진하는 최초의 모델이다. 셀트리온과 신한금융지주가 참여해 컨소시넘 형태로 사업을 신청했다. 신한금융지주는 인천 스타트업 파크에 향후 4년 동안 매년 30억 원의 예산을 지원하며, 전담조직을 통해 바이오 헬스케어·빅데이터·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 등 미래 혁신기술 중심의 스타트업 지원, 글로벌 특화 창업단지 조성, 스타트업 멤버십과 아카이빙 운영과 함께 스타트업 육성·지원을 위한 500억원 규모의 펀드도 조성할 계획이다. 셀트리온은 49억원 상당의 현물을 투자해 바이오 헬스케어 부문 스타트업을 적극 지원키로 했다.
현재 인천스타트업파크는 공공의 지원을 받게 될 미래 유망 스타트업 57개사를 선정한 데 이어 민간육성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게 될 80여개사도 확정했다. 또한 연세대, 인하대, 인천대, 세종대, 청운대 등 대학들과 신한금융그룹과 셀트리온그룹, 인천국제공항공사 등 국내외 육성 엑셀러레이터들과 거버넌스를 구축했으며,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는 인공지능‧빅데이터 등 기술상담지원 업무협약도 체결했다.
이를 통해 인천 스타트업 파크는 인천을 포함한 경기도 서남 지역을 대표하는 스타트업의 보금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최초의 창업타운 ‘세운상가’와 ‘테헤란밸리’
한국 창업활동은 미국의 ‘실리콘벨리’와 같이 인프라를 갖춘 거점 지역에서 자발적이거나 또는 개발사업을 통해 조성된 타운을 형성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전자의 대표적인 사례는 서울 ‘세운상가’다. 1967년부터 1972년까지 서울 종로구 장사동에 위치해 종로3가와 퇴계로3가 사이를 잇는 건물군으로, 국내 최초의 주상복합상가이기도 하다.
1960년대부터 세운상가 주변은 미군부대에서 빼내온 각종 고물들을 고쳐서 판매하는 사업장이 자리잡은 동네였었고 이곳의 상가들은 이런 주변의 사업장과 결합해 가전을 비롯 각종 전자 제품의 메카로 자리잡았다. 특히 이곳에서는 삼보컴퓨터와 같은 1세대 벤처기업이 태동했다.
세운상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이들중 많은 이들이 성장해 2세대 또는 3세대 벤처 창업가의 길을 걸었는데 대다수 기업인들을 배출한 지역이 ‘테헤란 벨리’다. 서울 강남역에서 삼성역에 이르는 약 4km의 거리를 일컫는 이 거리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무역업체들이 주로 들어서 있었다.
그러다가 1990년대초부터 테헤란로 일대가 개발되면서 업무용 빌딩이 대거 신축되었고, 초고속 인터넷망이 설치되면서 소프트웨어업체, 인터넷업체 등 IT관련 기업들이 입주하기 시작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에는 IT 관련 기업 뿐만아니라 금융기관, 대기업 본사, IT지원기관 등이 급속하게 집적했는데, 한글과 컴퓨터, 안철수 컴퓨터바이러스 연구소, 나모 인터랙티브, 한국어도비,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시만텍코리아, 한국오라클, 한국썬 등의 기업들이 테헤란로 주변에 입주했다. 테헤란로에 IT 관련 기업이 집적하자 이곳이 미국의 실리콘밸리와 비슷하다 하여 ‘테헤란 밸리’라고 불리기 시작했고, 2000년에는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서울벤처밸리’로 명명하고 각종 지원책을 제공했다.
세운상가와 테헤란밸리가 창업가들의 성지 반열에 오르는 데에는 지리적 이점과 편리한 인프라, 상대적으로 낮은 사무실 또는 사업장 임대료, 집에서 직장으로의 짧은 이동거리가 짧았던 점이 주요했다. 세운상가는 4대문 안 중심부로 서울의 어디든지 갈 수 있었고, 주변에 동종 또는 이종 사업자들이 많아 원만한 교류가 가능했다. 테헤란로도 개발을 통해 격자형으로 정비되어 있는 도로망과 지하철이 있어 교통이 편리한데다가 주위에 기업, 금융기관, 일급호텔, 백화점, 음식점, 코엑스(COEX) 등이 밀집되어 있어 사업에 유리한 지리적 조건을 가지고 있다.
◆정부 계획으로 탄생한 ‘판교 테크노밸리’
그러나 세운상가와 테헤란밸리는 한국경제가 성장하고, 마비라고 부를 만큼 교통 문제가 심각해진 데다가 사무실 임대료가 창업기업이 감내하기 어려울 정도로 상승하면서 매력을 잃었다. 기업들이 하나둘 빠져나가면서 기업간 교류도 축소됐다. 여기에 사무실 임대료 만큼 집값도 오르면서 젊은 직원들은 서울에서 경기도로 거주지를 이동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에 정부는 더 이상 자발적으로 창업타운이 생기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신도시 개발계획과 연계해 타운을 조성하는데, 첫 성공작이 바로 ‘판교 테크노밸리’다.
판교 테크노밸리는 스타트업 시대를 태동시킨 ‘성지’로 통한다. 미국 실리콘 밸리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지역으로, 정보통신기술(ICT)·생명공학기술(BT)·콘텐츠기술(CT)·나노기술(NT)관련 기업과 연구기관을 모아 기술 간 융합을 꾀하는 곳이다.
2001년 12월 성남 판교 택지개발 예정 지구가 지정되고, 경기도가 2004년 9월 판교테크노밸리 기본 계획을 수립했으며, 같은 해 12월 판교테크노밸리 특별 계획 구역 지정과 함께 판교 신도시 실시 계획이 승인되었다. 2006년 기공식을 시작으로 부지 조성에 들어가 2009년 준공했으며, 현재 44개 프로젝트 가운데 43개가 완료됐다.
판교 테크노밸리에는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IT기업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안랩, 한글과 컴퓨터, 다음카카오, 웨미이드, NC소프트, 넥슨 코리아, NHN 엔터테인먼트 등이 대표 업체들로, 이들은 테헤란 밸리에서 태동해 판교 테크노벨리로 이전한 뒤 자사 사업은 물론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판교 테크노벨리도 과거 세운상가‧테헤란 밸리와 마찬가지의 고민에 빠져있다. ICT 인프라와 다수의 입주 업체들 등 환경은 뛰어나지만 감내할 수 없을만큼 뛰어오른 부동산 임대료 등으로 젊은 직원들이 현지에서 거주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다. 특히, 강북 또는 강서 지역에 거주하는 직원들의 출퇴근 거리는 이전보다 더 멀어져 그만큼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도 줄어들었다. 재택 근무, 탄력 근무 등과 같은 방안이 있다고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방안은 못 된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판교 테크노파크의 경험은 조만간 문을 여는 인천 스타트업 파크도 반드시 고민해 봐야 할 문제다.
◆업무 환경 못지 않게 ‘스타트업’ 종사자들의 삶의 질 맞춰줘야
스타트업 타운이 형성되는 것은 일할 공간과 사업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창업 보육기관들과 함께 주변 대학 교통여건 등의 입지조건이 좋아 ‘오픈 이노베이션 활동’에 용이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핵심은 직원들이 편하고 즐겁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 주는 것이다. 업무 인프라도 중요하지만, 젊은 사업가, 직원들은 삶의 질 또한 포기할 수 없다. 외딴 지역에서 연구‧개발에 몰두하는 것도 좋지만, 보통사람들처럼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싶은 열망도 강하다.
이를 위해 서울시내의 기존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스타트업을 유치하는 경우도 많다.
지난 7월 문을 연 세계 최대 규모의 스타트업 지원센터인 ‘프론트원’이 대표적이다. 서울시 마포구 공덕동에 소재한 구 신용보증기금 본사 건물에 개관했다. 프론트원을 중심으로 반경 300m 내에는 서울창업허브, IBK 창공 마포 등 3개 창업보육기관에만 스타트업 200여 개가 입주해 있으며, 중소 보육기관들도 다수 입지해 마포구 전체가 하나의 스타트업 타운을 형성했다.
스타트업 관계자는 “‘실리콘밸리’를 동경하지만 한국에서 반드시 이와 같은 식으로 스타트업 타운을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기존 인프라의 장점을 살린 시설과 지원책을 개선‧발전시키면 어디라도 창업자들의 보금자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